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의 남미 도주 (문단 편집) == 유사 사례들 == * 몇몇 [[일본군]] 잔당들도 나치 잔당들처럼 [[브라질]]로 도주했다. 이를 두고 브라질이 친추축국 성향 국가라는 의견도 나오지만 브라질은 약간 경우가 다르다. 위의 주석에 언급되었듯이 아르헨티나처럼 연합국에 이름만 올려 놓은 게 아니라 잠수함에 지상군까지도 투입해서 추축군과 싸웠던 국가다. 당장 전후 브라질의 독재자였던 [[움베르투 카스텔루 브랑쿠]]부터가 2차 대전 참전으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다.[* 물론 그와 별개로 통치 방식에 있어서 파시즘의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다.] 당연히 이들에 대한 시선은 별로 좋지 않았다. 일본군 잔당들이 굳이 브라질로 피신한 까닭은 브라질에 [[일본계 브라질인]]이 많이 살기 때문에 섞이기 쉽기 때문으로 지금도 [[일본]] 이외에 세계에서 일본계 주민들이 가장 많이 사는 나라가 바로 브라질이다.[* 실제로 브라질과 일본을 오가는 수요가 상당히 많아서 [[일본항공]]은 2010년 파산 선언하기 직전까지 도쿄 출발 [[로스앤젤레스]]나 [[뉴욕]]을 경유해서 [[상파울루]]까지 항공편을 띄웠을 정도였다. 다만 일본에서 브라질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은 '''도쿄가 아니라 [[시즈오카현]]의 [[하마마츠시]]'''다. 브라질 총[[외교공관#s-3.3|영사관]]도 여기에 있으며 지역에서 [[포르투갈어]]는 한국어나 중국어보다도 높은 중요도를 갖고 있다.] 그나마 여론이 호의적인 [[인도네시아]]나 [[부건빌]] 등지에 정착하여 살거나 [[츠지 마사노부]]처럼 [[베트남]], [[라오스]] 등지의 내전에 참여하여 반공투사 노릇을 하는 사례도 있었다. 양칠성이나 [[허영(영화 감독)|허영]]과 같이 전후에도 남아 [[인도네시아 독립전쟁]]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도운 일본 잔당들도 있다. [[베트남]]에서는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일어나자 [[영국]]이 무장해제된 일본군 포로들을 치안 유지에 동원하기도 했고 반대로 공산당 측에 가담하여 싸운 일본군 잔당도 있었다. 그마저도 안 된 단순 낙오병들은 [[오노다 히로]]처럼 자신이 낙오한 곳에서 그대로 살면서 민가를 약탈하거나 민간인을 살해하며 살아가기도 했다. [[일본군 패잔병]] 문서 참고. * [[국공내전]]이 [[중국국민당]]의 패배로 끝나고 [[대만]]으로 [[국부천대]]가 이루어지자 남중국 지역에 낙오한 일부 국민당 잔당들은 국경을 넘어 [[동남아시아]]로 도피한 후 70~80년대에 [[골든 트라이앵글(마약)|골든 트라이앵글]]과 이어지는 그 지역 마약 공급 루트를 잡고 한동안 [[마약 카르텔]] 노릇을 했다. * 1990년대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면서 흑인들에게 온갖 [[백색테러]]를 저질렀던 군, 경찰 인사들이 흑인들을 피해 이주하는 [[화이트 플라이트]] 행렬에 섞여서 대거 해외의 백인 위주 국가로 도피하기도 했다. * [[시에라리온 내전]]에서 민간인들을 상대로 온갖 패악질을 벌였던 [[혁명연합전선]]의 일부 잔당들은 뒤를 봐주던 [[라이베리아]]로 도피했다. 원래는 [[혁명연합전선]]에 쫓기던 난민들이 주로 라이베리아에 몰렸는데 전쟁이 끝나니 상황이 반대가 되었다. 라이베리아는 내전이 너무 오래 이어졌고 이에 대한 처벌도 국가 상황 때문에 거의 전무했다 보니 정부에서든 민간에서든 이들에 대한 처벌 의지 자체가 없었고[* 라이베리아는 내전이 너무 오래 이어진 나머지 각 집마다 손목이 잘린 형과 강간당한 여동생, 그리고 마약 먹고 포로를 학살한 동생이 있는 등 전쟁범죄의 여파가 너무 만연해져서 누가 누구를 처벌할 처지가 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은 아직도 라이베리아에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있다. 개중에는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당당히 자신의 전적을 밝히는 자도 있고 정계에 진출한 작자도 있다. * [[이라크 내전]]과 [[시리아 내전]], [[제2차 리비아 내전]]에서 갖은 [[전쟁범죄]]를 일삼던 해외 출신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 대원들도 전쟁에서 패배한 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정부의 심판을 피하기 위해 그 신분을 숨기고 자신의 모국으로 다시금 은근슬쩍 도망치는 경우가 있다. 대부분은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에 가담한 순간 국적이 말소되어 인정되지 않지만 [[https://www.cgai.ca/justice_for_the_victims_how_canada_should_manage_returning_foreign_fighters|이렇게 모국으로 돌아온 전쟁범죄자들]]에 대해 어떤 처분을 내릴지가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로는 샤미마 베굼이 있다. * [[르완다 내전]] 당시 학살을 저지른 후투족 가해자들, 특히 학살을 주도했던 [[테러]]조직 인테라하므웨(Interahamwe)의 구성원들은 [[폴 카가메]]의 투치족 반군이 [[우간다]]의 지원을 받아 [[르완다]]로 돌아와 파죽지세로 각지를 점령하자 투치족들이 복수를 위해 쳐들어왔다고 겁을 먹고는 대거 옆 동네 [[자이르]]로 도망쳤다. 카가메는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자이르]]를 [[콩고 전쟁|침공해서]] 인테라하므웨 잔당들을 대거 쓸어 버리고 내친 김에 그 곳의 철통같은 [[독재자]] [[모부투 세세 세코]]까지 몰아내 버렸다. 문제는 당시 동맹을 맺은 [[로랑 데지레 카빌라]]가 카가메의 도움으로 정권을 잡아 놓고 카가메를 홀대하자 [[콩고민주공화국]]을 또 침공하는 바람에 상호방위조약으로 묶인 남아프리카 개발공동체 소속국가들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고 혼란을 틈탄 적극적 대외개입을 원하던 [[무아마르 카다피]]의 [[리비아 아랍 자마히리야]]와 [[오마르 알바시르]]의 [[수단 공화국]]까지 참전하면서 전쟁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고 말았다는 것이다. 게다가 콩고에 진입한 [[르완다군]], 그리고 이들의 최종 배후인 [[요웨리 무세베니]]의 [[우간다군]]은 [[콩고민주공화국]] 강역에서 수많은 [[전쟁범죄]]를 자행하고 [[패권주의]]적인 생각 아래 어용 반군들을 후원하면서 콩고의 자원들을 수탈하는 바람에 전쟁 중 540만의 콩고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결국 해외로 도피한 전범을 쫓겠다고 벌인 전쟁이 또 다른 전쟁범죄를 낳았다. 게다가 보복학살 역시 막을 수 없었던지라 최소 6만명에서 20만명의 후투족 난민들이 '실종'되는 사건도 터졌는데 이들은 살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었다. * 한편 [[르완다 내전]] 당시 [[자이르]]로 도망치지 못한 [[르완다]] 후투족 전범들은 다른 해외 지역으로 도피했다. 배후에 있었던 지도자급 인원들은 주로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등으로 뒷돈을 먹여가며 도망쳤고 행동대장급 인원들은 [[케냐]]나 [[탄자니아]] 등으로 도망치거나 [[미국]]으로 도망쳐 숨죽이면서 살았다. 그러나 [[자이르]] 외에 다른 곳으로 도망친 후투족 전범들 및 국내로 도망친 전범들은 사실상 처벌이 불가능했다. 그 이유는 [[라이베리아]]처럼 가해자의 수가 너무 많았던 데다 그들은 다 평범한 민중 신분으로 불규칙적, 비계획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가해자가 르완다의 평범한 후투족 주민들이었고 이들의 숫자는 르완다 인구 전체의 1/3 수준으로 이들을 전부 처벌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또 내전의 상처를 봉합한 지 얼마 안 된 르완다의 입장에서는 이는 국가를 다시 분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투치족 [[폴 카가메]] 대통령은 국민 대통합을 명목으로 대부분의 학살 가담자에게 조용히 관용을 베풀고 넘어가는 대신 [[벨기에]]가 만든 의미 없는 민족 구분을 전부 철폐하고 하나의 '르완다인'이라는 정체성을 이식한 후 학살을 뒤에서 조종한 [[프랑스]]의 [[프랑스어]]를 배제하고 [[영어]]를 도입하여 학살의 상처를 씻고 새로운 국가로써의 르완다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는 으레 겁먹고 먼저 해외로 도망친 대부분의 후투족 망명객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펠리시앵 카부가나 테오네스트 바고사라, 베르나르 은투야하가 같은 거물 배후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로, 이들은 진작에 소관을 [[헤이그]]와 [[아루샤]]로 넘겨 버려서 끝까지 추적하도록 하고 있다. 카부가는 2022년 [[프랑스]]에서 잡혔고 바고사라는 [[카메룬]]에서 구금되었으며 은투야하가는 [[탄자니아]]에 있었다가 2004년 [[벨기에]]로 가서 자수했다. * [[유고슬라비아 내전]] 당시 [[라도반 카라지치]]나 [[라트코 믈라디치]]를 비롯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내부의 [[유고슬라비아 연방]] [[세르비아]] 괴뢰국 [[스릅스카 공화국]]의 전범들은 종전 후 본진인 [[세르비아]]로 도망갔고 크로아티아계 전범들도 [[크로아티아]]로 도망갔다. 실제 국가 간 국가의 전쟁이라기 보다는 보스니아 내부에 난립한 수많은 민족별 [[괴뢰국]]들을 이용해 [[대리전]]에 가까운 전쟁을 치렀기 때문에 대부분이 뒷배를 대주던 본진으로 도망갔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